사전적 의미에서 감정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을 말합니다. 이 정의는 피상적입니다. 감정으로 인해 일어난 다양한 사건 사고와 삶의 슬픔과 기쁨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예일대 감성지능 센터장인 마크 브래킷은 감정을 더 구체적으로 정의합니다.
- 인간의 복합적 감각이 몸과 마음, 바깥세상의 소식을 뇌로 전달하면, 뇌가 이를 정리하고 분석한 후 표현한 것
브래킷의 설명에 따르면, 감정은 정보의 일종입니다.
한 개인이 무언가를 경험하면 내면에서 메시지, 즉 정보가 발생합니다. 이 메시지는 뉴스와 유사하며, 뉴스 행 간의 의미를 잘 파악하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듯이, 감정이라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적절하거나 부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뇌가 이를 정리하고 분석한 후 표현 한다'는 말은 이해가 잘 안되네요. 뇌가 이를 어떻게 정리하고 분석하는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 궁금증은 불교 심리학의 해설로 해결할 수도 있겠네요. 불교에서는 감정이 일어나는 원리를 '오온'(五蘊)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오온은 색(물질), 수(감각), 상(인식), 행(행위), 식(의식)으로 구성됩니다. 몸은 땅, 물, 불, 바람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눈, 코, 귀, 입, 피부라는 다섯 감각기관을 통해 감각을 느낍니다.
외부 세계의 사건을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하는 거죠. 예를 들어볼까요. 설거지하던 남편이 그릇을 떨어뜨렸어요. 쨍그랑하고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에 어떤 아내는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일 겁니다. 반면에 다른 이는 걱정하는 대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왜 제 각각의 반응이 나올까요? 쨍그랑 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청자의 과거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올라옵니다. 0.001초의 빛의 속도로 소리라는 감각과 과거 기억의 화학적 융합이 일어납니다. 이때 생겨나는 것이 감정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을 더 많이 갖고 있죠? 사람들은 해소되지 않은 묵은 감정들을 이야기와 함께 무의식 속에 저장합니다. 기억이 되는 거죠. 좋은 기억은 해소할 일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감정적 반응은 대부분 불쾌합니다. 여기서 반응과 대응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반응은 즉각적이지만 대응은 상황을 이해한 행동입니다. 반응과 대응은 달라요.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우리는 반응이 아니라 대응을 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A양의 과거를 살펴보면, 왜 그녀가 남자친구와 떨어져 있을 때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녀는 분리불안 증상을 겪었습니다. 이는 그녀가 태어났을 때 경험한 가족 사정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녀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의 외도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심지어 안아주기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아기가 기억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 느낌이 무의식 속에 남아서 그녀 삶에 영향을 주고 있었던 거죠.
자, 그러면 감정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볼까요?
마크 브래킷과 불교의 설명을 적절히 섞어 보겠습니다.
- 인간의 감각 기관이 몸과 마음, 바깥 세상과 접촉할 때 일어난 무의식의 기억이 일으킨 화학 융합 작용으로 발생한 정보
감정이란, 세상을 받아들이는 내면 의식이 일으키는 정보입니다. 의식의 상태에 따라 일으키는 감정도 달라질 수 밖에 없겠죠. 동요하는 감정으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난다면, 어쩌면 내 의식 속 깊은 곳을 살펴야 할지도 모릅니다.